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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가볼만한 곳 드라마촬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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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드라마촬영장은 순천 오픈드라마세트장이라고도 부릅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의 집, 상가 그리고 거리 등이 있어요.







​들어가자마자 포니 자동차를 발견했습니다. 포니는 한국의 자동차 산업의 기술발전과 자립에 있어 획기적 역할을 한 모델로 국내에 보존된 포니1은 대부분 1970년대 후반 또는 1980년대 초반에 생산된 것이라고 합니다.

 

포니가 처음 생산된 1975년 제작된 포니1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승용차가 한 대 있는데요.  산업기술 유물로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여전히 운행이 가능하며, 엔진룸이나 외부·실내의 보존 상태가 좋고 기본 부품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승용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거죠. 2013년 8월 27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순천드라마촬영장에 들어서자마자 살짝 몸을 왼쪽으로 비틀면 영화관이 나옵니다. 영화관으로 가기 전에 일본식 가옥도 보이구요

1970년대의 한국영화는 이전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엄청나게 보급되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진짜진짜 좋아해와 고교 얄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1969년의 영화관객의 수를 정점으로 서서히 관객을 잃기 시작하면서 불경기를 맞게 되자 정부는 영화법을 개정합니다. 1973년 4차 영화법에는 국가의 이데올로기의 정당성과 이념의 구현을 위한 홍보 선전 수단을 강화하는 시책이 발표되었습니다.


1970년대는 경제 계획에 의한 근대화의 정책이 추진되면서 서구적인 것에 대한 가치 평가가 높아지고, 국민의 의식은 물질적인 추구를 향하게 되었습니다.더불어 현실적인 상향심리와 쾌락성의 지향으로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영화나 폭력적인 영화들이 대중문화패턴을 이루고 있었죠.



유신이라는 억압적인 체제하에서 밀도짙은 주제나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이 만들어 질 수 없는 상황은 통속적인 리얼리티의 일면인 산업사회화 되어가는 사회상황을 담은 영화를 만들게 합니다. 



1970년대의 특징 중의 하나가 1976-1977년 사이에 등장한 ‘고교 영화’의 등장입니다. 김응천 감독의 「여고 졸업반」으로 시작한 여고생 시리즈는 「진아의 편지」·「소녀의 기도」를 비롯한 문여송 감독의 「진짜진짜 미안해」 시리즈이다. 그리고 허리우드 극장을 중심으로 석래명 감독의 「고교얄개」시리즈는 극장가를 석권하는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장르들의 영화가 등장한 것은 당국의 강력한 시나리오 사전 심의와 검열로 표현의 한계를 느낀 감독들이 자기의식을 표출 할 수 있는 영화에는 손을 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미성년자가 아니라 연소자입장불가라는 간판을  보면서 어릴때 일이 떠올라요. 그 때는 문화교실이라는 게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 날에는 영화를 공짜로 봤던가 더 싼값으로 봤던가 그랬어요. 그럼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은 꼭 나를 데리고 영화관에 갔습니다. 막내에게 영화관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던거죠. 그런 날 영화관들은 미어 터집니다.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여긴 고고장입니다. go go 고고는 1960년대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번져나간 빠르고 역동적인 춤이에요. 특별한 제약 없이 그냥 막 흔들면 되는 춤입니다.  로큰롤과 재즈 등에 어울리는 춤이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말부터 젊은 층에서 유행했다고 합니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이 자전거를 보면서 이 노래가 생각난다면 라떼인거죠. 나이스슈즈가 참 정겹습니다. 라떼는 그랬거든요. 나이키 말고 나이스, 아식스 말고 아토스.


양품점과 양복점이 있었습니다. 양품점은 주로 엄마들의 옷을 판매하는 곳이구요 양복점은 아빠들의 옷을 판매하는 곳이에요. 판매라기 보다는 옷을 맞춰주는 곳이었죠. 지금은 이런 말을 쓰지 않는데 옷 치수를 다 맞춰놓고 며칠 뒤에 꼭 가봉하러 간다고들 했어요. 엄마가 가봉하러 갈 때마다 곧잘 따라다녔어요. 


옛날에는 전봇대에 광고지들이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전봇대는 사설 광고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긴 하지만요. 기생충을 없애기 위한 광고지, 특정한 날에 쥐약을 놓아야 한다는 광고지까지. 



전봇대는 다양한 광고를 할 수 있는, 지금으로 치자면 광고를 위한 일종의 플랫폼이었던거죠.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교문 앞에서 항상 선생님이 서 계셨어요. 지은 죄도 없으면서 늘 움츠러 들었죠. 라떼만 해도 종을 치는 일은 없었지만 종을 치는 일은 두고두고 학교와 연관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는 사실 우리나라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국가 주도의 획일적인 지휘 아래 모든 활동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개개인의 개성은 존중되지 않았어요.


그 때만 해도 연탄 보일러가 있는 집은 부자였다고 합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그건 굉장한 부자였죠.


푸세식화장실 아니 변소입니다.  배설물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커다란 구덩이나 정화조에 그대로 저장해 두었다가 똥바구니로 퍼냈다고 합니다. 

외부로 개방되어 있어서 날이 따뜻해지면 구더기와 파리가 득실댔고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시너나 휘발유를 뿌려서 불에 태우기도 했답니다.


똑같은 포즈의 결혼 사진을 우리 집에서도 본 적 있어요. 서로 어색한 표정을 짓는 것과 살짝 몸을 옆으로 돌린 각도까지 똑같아요 신랑의 눈썹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짙은 검은색이구요 신부는 신랑에게 등을 기대고 새침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합니다. 

똑같은 포즈로 사진 한 번 찍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초록색의 버스 정류장 입간판 옆에는 빨간 우체통이 서 있습니다. 밤새워 누군가에게 쓴 편지를 누가 볼까 무서워 새벽 일찍 뛰어나와 얼른 우체통에 넣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는 수줍음 많은 어느 소녀가 그려집니다.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그 때 그 시절의 판잣집들이 즐비합니다.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가 가져온 도시 개발로 인해 살 곳을 잃어버린 도시 빈민층의 아픔을 그렸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는 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집에 사는 주인공 가족의 아버지를 난장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끊어낼 수 없는 깊은 가난의 뿌리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면서 이들의 삶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함께 고통을 짊어져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오르막의 끝에 다다르면 바로 또 꼬불꼬불한 내리막이 나타나고 그 길 좌우에는 다닥다닥 판잣집들이 붙어 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그 때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이를 하였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삶을 꾸려 나갔습니다.


제대로 된 단열재를 쓰지 못한 판잣집에는 여름에는 열기가 그대로 들어오고 겨울에는 온기가 그대로 빠져 나가버리는 아주 역설적인 집이었습니다. 부식에 취약해서 화재가 자주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판자촌의 우물은 요긴한 목적으로 쓰였구요 집집마다 커다란 드럼통에 물을 담아놓기도 했습니다. 불이 나면 어디서든 물을 퍼서 빨리 끄지 않으면 다시 집없는 설움을 견뎌야 했으니까요.'


내가 땅의 주인이라면 재개발은 참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산꼭대기까지 올라와 세를 사는 사람들에게 재개발은 난데없는 물벼락과도 같은 일입니다.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겠어요. 있는 사람들에게 불경기는 새발의 피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같은 서민들에게 불경기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될까 걱정입니다.


판자촌이 끝나면 갑자기 언약의 집과 소망의 집이 나타납니다. 푸른 잔디밭 위에 동화같은 작은 집들은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는 무언의 위로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작은 돌탑 하나하나를 쌓아 올리면서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대부분은 우리 식구가 같이 살 수 있는 집 한 채만 생기게 해달라고 빌지 않았을까. 아마도 나라면 시내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가게 해 달라고 빌지는 않았을까. 거센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고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은 돌탑입니다.


길죽한 호박과 동글동글한 호박이 달려있는 터널을 지나 이제 판잣집을 내려갑니다. 어디선가 구수한 된장찌개 끓이는 냄새가 올라옵니다.


순천드라마촬영장은 실제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아직까지도 수정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중입니다. 잊혀져 가는 우리들의 옛모습을 지켜나가는 것은 의외로 소중한 일입니다.


궂은 비가 내리는 날에 옛날식 다방에 앉아 첫사랑 그 소녀를 문득 떠올립니다. 그녀도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나처럼 늙어가고 있겠지. 이제와서 청춘에 대한 미련이 있는게 아니라. 이젠느 그 때와 같은 그런 사랑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가슴 한 켠이 텅 비어 버린 것 같다.

뭐 그런 내용이에요.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아쉬운 건 정말 그런 거에요. 불현듯 가끔은 내 마음 한 켠이 텅 비어 버린 것 같다는 ㅎㅎㅎ


오랜만에 콩주머니를 보니 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동회가 생각납니다. 청군과 백군의 싸움은 결국 콩주머니로 박 터트리기로 끝이 났어요. 지금은 운동회가 예전만큼 재밌지는 않아요. 운동회가 동네 잔짓날이었는데. 



순천드라마촬영장 후기

순천드라마촬영장을 맘먹고 꼼꼼히 돌아보면 두 시간은 걸립니다. 쉬지 않고 꼬박 걷는다면 말이죠. 

아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힘이 들 것 같아요. 초등학생 이상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어른들에게 재미있는 장소에요. 지나간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깔깔호호 웃을 수 있는 곳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름은 비추. 야외에서 계속 걸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비추에요.

딱 지금부터 초겨울 그리고 봄이 시작되는 3월에 절정이겠어요.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드라마와 책, 영화에서의 이야기들이 모두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좋았어요.  돌아다니고 끄적거릴 수 있는 지금 이 모든 시간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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